점묘화를 통해 보는 양자물리
26.03.31 - 26.04.12

우주라는 말은 가까이하기 힘든 뭔가 보이지 않는 큰 힘이 있다. 

그림 작업을 지속적으로 하는 건 쉽지 않았다.

철학적으로 나는 왜 태어나고 나 자신이 뭔지 30여년을 찾아

헤메고 또 헤메었다. 파랑새는 멀리 있지 않았다.

항상 바로 앞 언제나 어릴 때 부터 있는 그것이다.

우주는 에너지이고 미묘해서 보이지 않고 잡을 수 없고 끝도 과거도 미래도 고통도 기쁨도 슬픔도 없는 바로 그것이다. 

그것을 작은 점으로 우주 속 나를 표현한다.

그리고 점은 씨앗이고 생명이며 기억이며, 존재들, 희망 빛들이다.

지구도 세계도 모두 점에서 출발한다. 점은 수많은 생명이 존재하는 에너지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 점으로 소통하고 살아간다.

형이상학, 양자물리학, 크리스탈, 우주의소리 피라미드의 공명기하학! 이런 것들이 곧 우주이다.

언어는 나를 표현한다. 

언어선택을 잘하는 것도 에너지를 표현하는 것이다. 인간은 나 자신의 에너지를 잘 쓰고 남을 돕고 항상 선(善)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악이 있기에 선도 존재한다. 짧은 게 있어야 긴 것이 존재하듯 세상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주속의 미묘한 작은 알갱이로 살아가고 있다. 


[뉴스인tv]정경호 기자
'나 속 우주' ...점으로 풀어낸 존재와 우주의 연결

배영숙 작가가 ‘나 속 우주’를 주제로 한 초대 개인전을 열고, 내면의 본질과 존재의 근원을 탐구한 회화 작업을 선보인다.

전시는 3월 31일부터 4월 12일까지 대전 유성구 원신흥남로 일대 갤러리Q에서 열린다. 24시간 무인으로 운영되는 이번 전시는 작가가 오랜 시간 천착해온 ‘점’의 조형 언어를 통해 인간 내면의 풍경과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흐름을 시각화한 작업들로 구성된다.

배 작가는 외부 세계의 재현 대신 ‘내면의 풍경’에 집중한다. 화면을 채운 미세한 점들은 반복적 붓질을 통해 축적된 결과물로, 개별적인 단위이자 하나의 거대한 흐름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점의 집적은 인간과 우주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음을 암시하며, 존재를 구성하는 근원적 에너지로 읽힌다.


대표작 ‘나 속 우주’는 푸른 색조의 깊이 있는 층위를 바탕으로 확장되는 이미지를 형성한다. 화면 가득한 점들은 가까이에서는 개별적 흔적으로 보이지만, 멀리서 보면 하나의 파동처럼 응집되며 부분과 전체의 긴장을 드러낸다. 특히 화면 하단을 가로지르는 유려한 선은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이자 서로를 연결하는 흐름으로 작용하며, 작품의 상징성을 강화한다.


배 작가의 회화는 반복과 수행의 과정이다. 점을 찍는 행위는 시간의 축적이자 존재를 구성하는 리듬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를 가시화하려는 수행적 태도로 이어진다. 이 같은 작업 방식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존재의 근원을 사유하도록 이끈다.

작가 노트에서 그는 “우주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에너지이며, 점은 생명과 기억, 그리고 존재의 시작”이라며 “우리는 모두 우주 속 작은 점으로 연결돼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배영숙 작가는 개인전 12회, 개인부스전 2회, 아트페어 14회, 그룹전 70여 회에 참여하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대안공간 목호갤러리 실장을 역임했으며, 울산미술협회와 창작미술인협회 운영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가상공간 로코코 대표와 로코코아뜨리에, 그림과창작미술교실을 운영하며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갤러리 관계자는 “이번 전시는 점이라는 조형 언어를 통해 존재와 우주의 본질을 탐구하는 자리”라며 “관람객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1회 아트플리마켓

유성구에도 아트 플리마켓이 열리다 !

26.03.23 - 26.03.30

일주일 동안 진행된 참가업체 및 작가를 소개합니다.

김경진 작가

공연장의 차가운 공기와 뜨거운 조명에 들뜬 나날과, 세계의 골목을 누볐던 시절을 생각하며 펼치지 못한 장면과 열어보지 못한 문 뒤를 상상하는 취미가 있다. 

26. 02. 23 - 26. 03. 22 

 

 

 

개관특별전 

질문을 던지는 갤러리 Q 

보이는 이미지는 그린 그림이 아닙니다. 

물과, 찻잎 그리고 종이가 만나 그려낸 자연 현상입니다.  

찻잎이 물에 우러나, 그 물이 종이 결 사이사이 틈을 채워 나가며 어디론가 이동하는 흔적입니다. 

과학적인 원리로 해석을 할 수 있죠. 

자연의 모든 것은 과학의 원리로 이루어져 있고 해석됩니다. 

과학 또한 자연에서 발생됐다 할 수 있습니다.  

과학의 원리는 자연의 현상들을 발견하고 이를 이용하여 무언가를 재창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재창조, 즉 모든 창조에는 작자의 의도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어떠한 목적을 향해 조정하는 행위가 반드시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연 속 발견의 과정에 과학이 있고, 아름다움은 ‘발견’을 의도를 가진 해석의 과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해석하고자 하는 의도가 아름다움을 발견하기도 하고 과학적 원리인 자연현상으로 보는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결국 아름다움(미)은 나의 의도에서 시작됩니다. 이미지를 보이는 것(발견)과 보는 것(해석)의  차이로 예술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에겐 아름다움이, 누군가에겐 현상일 뿐인 것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의도를 가지고 어떠한 목적지(방향)로 해석하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과학이 예술로 발전될 수 있고 모든 것은 예술이 될 수 있듯, 세상은 나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닌 내 안에 있다는 것이 됩니다.  

이 작품들은 물이 존재하는 형태일 뿐이지만 이리저리 여행하듯 이동하며 흔적을 남겨 이미지를 나타냅니다. 보여지는 것은 하나의 형상이지만 각기 다른 해석으로 이미지를 발견합니다.  

이 그림(이미지 상)들은 자연적 원리로 재창조한 것입니다. 작가는 이 이미지들을 발견했고    아름다움을 해석합니다. 작가는 관객의 입장에서 그림들을 마주합니다. 

그렇다면, 이 그림의 주인(창작자)은 누구인가요? 

이 창조물들은 목적을 가지고 의도된 이미지입니다. 자연적인 현상을 이용해 이미지를 간. 직접적으로 의도해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연히” 발견한 자연현상의 이미지가 아닌 “연출된” 이미지라면, 나타내고 싶은 목적이 있는 이미지인데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관객마다 다르게 발견하고 해석해도 되는 것일까요? 

현재 전시되고 있는 이 작품들에는 각각의 캡션(작품정보)이 없습니다. 

작품의 크기, 소재, 재료, 제작 년도, 작품 제목, 가격 등을 표기하는 명찰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없습니다. 전시 제목도 내세우지 않습니다. 

작가는 관객이 작품 이미지를 발견하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외부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관객이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과정에 최대한 개입하지 않고 오롯이 홀로 발견하기를 기다립니다. 

작가는 관객이 이미지를 마주하며 얻게 되는 발견, 해석하는 과정에서의 다양성을 열린 결말로서 작품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하나의 상을 통해 다양성을 끌어내지만 그 다양성들 속에는 공통점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모두가 다르게 해석하지만 결국엔 비슷한 관점으로 같은 카테고리 안에서 사고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같은 맥락으로 다다르게 된다는 것은 작가의 의도가 닿았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관객에게 작품의 목적지로 내려놓지 않아도   의도한 방향으로 향합니다. 

작가는 이 경계에 대해 사유합니다. 다름과 같음의 경계,,, 이 경계는 모순입니다. 다름은 같을 수 없고, 같음은 다를 수 없는 것인데,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같고, 

같지만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그림들의 의미는 무엇인지 이제 말 좀 해보라고 하실 건가요? 

내가 발견한 것이 있지만 혹시나 내 해석이 빗나갔을까 전혀 못 알아챈 척 해석

을 내놓으라고 하고 싶은 본능의 경계, 또는 작가의 해석이 궁금하지만 한편으론 

모르고 지나쳐도 되는 양가 감정의 경계 사이에서의 모순…  

결론은 당신이 생각하는 그것이 정답입니다. 

그러나 내가 여기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무엇을 찾고 있는지, 무엇을 생각하는지… 
내 속에 답이 있지만, 그 답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심어준 것이    아닐까요…? 

내가 느끼는 내 감정이, 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닌, 오롯이 내 것이 아닌 누군가에 의해 의도된 이끌림은 아닐까요…? 

                                                                                                              이곳은 수수께끼 전